햇살과 바람이 가득한 제주, 판포포구의 바다가 보이는 나즈막한 언덕에 위치한 판포리 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말갛고 네모난 이 건물은 부부가 운영하는 소규모 디자인 에이전시 디자인에이비의 사옥이다. 국내 다양한 협소주택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는 AAPA 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이 사옥은 디자인에이비의 오피스와 셀렉숍, 두 가지 성격을 가진 복합 공간으로 작고 경제적이지만 아름다운 생활 터전으로서의 협소주택의 성격을 보여준다. 제주의 한 켠에 자리잡은, 작지만 아름다운 디자인에이비의 사옥을 거닐어보자.
재산 가치로 집을 대하는 관점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근래에는 집을 생활 가치로 이해하는 관점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협소주택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는 추세다. 제한된 토지와 수요의 불일치로 인한 주택난으로 주택의 규모를 줄이는 것은 선택이 아닌 불가피한 뒷걸음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직면한 대세 속에서 주택에 대한 욕구를 실현 가능한 방안을 찾아나간다는 점에서 협소주택은 긍정적인 시도임에 분명하다.
최근 서울 도심의 생활에 지친 젊은 세대가 제주도로 이동하는 현상이 크게 떠오르면서 제주도의 토지 가격도 날이 다르게 높아지는 추세다. 디자인에이비 사옥은 사진에서 보듯 두 개의 낮은 협소 주택이 연결된 형태로, 총 건축면적 81.06㎡로 설계되었다.
제주의 대지에 자리 잡아서 좋은 점은 건물 주변의 대지를 자연 그대로 곁에 두기 쉽다는 것이다. 디자인에이비의 사옥 곁에는 자연스럽게 가꿔진 흙과, 돌, 나무와 풀들이 어우러져있다. 탁 트인 바다와 광활한 하늘, 주택이 밀집되지 않은 대지 위의 낮은 사옥과 어울려 여유로운 시야를 선사한다.
아직 간판이 붙지 않은, 곧 제주의 손님들이 드나들 디자인 에이비의 셀렉숍 입구로 사용될 현관 모습이다. 화이트 톤의 격자 타일로 전체를 간결한 느낌으로 마감하여 디자인 숍의 아이덴티티를 은근히 드러내고, 문가 상단과 양 옆에 구조를 덧대어 안정감을 더해주었다. 벽면의 창문도 격자 타일의 범위를 지켜 시공하였다. 건물의 형태와 타일, 문과 창문이 전체적으로 사각형의 그리드로 묶여 미니멀한 인상을 준다.
숍 공간의 내부. 좌식 혹은 입식으로 모두 사용이 가능한 ㄱ자의 좁은 테이블 안쪽은 화이트 타일로 일관적인 디자인 요소를 적용하고, 상판은 옅은 광택이 도는 목재로 마감해 아늑함을 살렸다. 인상적인 부분은 창문인데, 벽면 중앙에 창을 내지 않고 모서리 끝에 닿도록 두 개의 창문을 내어 시야가 자연스레 확장되고 넓어 보이도록 디자인했다. 천장에는 추후 숍 플로어 진열 후 디스플레이를 고려해 경사면에 레일 조명을 설치했다.
사옥과 오피스가 연결되는 부분은 내추럴한 느낌이 살아있는 목재로 시공했다. 낮은 층계로 동선을 만들어 두 개의 건물은 물론 오피스 내 개별 공간으로의 이동도 용이하도록 했다.
조금 멀리서 보면 사진과 같은 모습이다. 좁은 면적으로 지어지는 협소주택 특성상 테라스와 같은 공간을 따로 두지 않은 대신 두 건물 사이의 짜투리 면적을 활용하여 테라스와 같은 성격의 교차 공간을 만들었다. 잠시 실외로 나와 햇빛을 쬐며 거닐거나 낮은 나무 층계에 걸터앉아 담소를 나누기에도 좋은, 오피스와 숍의 사이 좋은 공용 공간이다.
디자인에이비사옥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 자신있게 꼽을 수 있는 이 곳. 말갛고 네모난 벽 속의 액자모양 빈 공간을 통해 제주의 푸른 바다가 그대로 들어와 마음이 평온해진다. 역시 두 건물의 연결부를 기능적, 심미적으로 모두 완벽하게 활용한 공간으로, 잠시 앉아서 고즈넉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단에 앉을 수 있는 구조를 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쯤이면 전체적으로 창문의 위치와 모양에 공을 많이 들인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사진은 셀렉숍의 내벽으로, 흔히 창을 내지 않는 벽면 가장 하단에 가로로 긴 창문을 내었다. 공간이 넓어보이는 착시 효과를 줌과 더불어 땅 가까이에도 아름다운 그림과 같은 풍경이 숨어있음을 환기시켜준다. 도시의 건물 밀집지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제주의 대지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아이디어가 아닐까.
오피스 건물의 모습이다. 왼쪽 공간의 경우 미닫이문을 넓게 내어 문을 활짝 열었을 경우 옆 공간과의 연결성이 강조되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확장되도록 했고, 문을 완벽히 닫을 경우 벽과 같이 기능하여 분리가 되도록 공간 활용의 유동성을 살렸다. 오피스의 쓰임 상 분리 구조가 필요하지만, 협소주택의 특성상 작은 전체 면적 내에서 완벽히 분리시킬 경우 답답해보일 염려가 있다. 이처럼 가변성을 가진 장치들과 확장성을 가지는 연결 구조가 건물 전체에 답답한 느낌이 없도록 큰 역할을 한다. 사진에서 보듯 오피스의 안쪽에서도 모든 문을 열면 반쯤 야외에 있는 듯한 확장감을 느낄 수 있다.
협소주택의 특징을 가지고 설계된 제주 디자인에이비 사옥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오피스나 숍의 용도가 아닌 주거용 협소주택의 매력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다양한 협소주택 인테리어들을 모아둔 이 곳을 확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