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공간(空間). 아무것도 없기에 무엇이로든 채울 수 있고, 아무것도 아니기에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간이다. 빈 곳을 어떤 컨텐츠로 채우느냐에 따라 허무로 돌아가기도,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영역이 되기도 한다. 주어진 공간을 바탕으로 최적의 컨텐츠를 계획하고 섬세하게 디자인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 소개할 건축가의 일이다.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거점을 둔 건축가 제로스퀘어( ZEROSQUARE )는 특정 공간을 누군가의 이야기로 채움으로써 아름답고 편안하며, 의미있는 장소로 만드는 일을 한다. 용도에 최적화된 공간적 기능성은 물론, 클라이언트의 취향에 맞춘 디테일한 미적 감각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며, 나란히 서서 함께 고민하는 전문가의 자세에서 비롯한다. 그 진정성있는 직업 정신의 결괌물은 과연 어떨까. 오늘 기사에서는 제각각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제로스퀘어의 다섯 가지 프로젝트를 넓은 관점에서 간략하게 둘러보도록 한다. 당신이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폭넓은 스타일을 두루 보여주는 이 다섯 가지 프로젝트에서 또 하나의 멋진 영감을 얻어보자.
전체 공간을 넓게 시야로 담아보자. 크지 않은 규모의 오피스지만 높은 층고를 활용해 복층 구조로 설계하는 것으로 실용 면적을 넓혔다. 계단은 벽쪽으로 밀착하고 디자인을 단순화해 동선을 넓게 확보했으며, 업무 공간은 안쪽으로 배치해 안정감을 유지했다. 2층 영역은 1층 규모의 일부분만을 활용했기 때문에 높은 층고가 주는 탁 트인 개방감은 복층 구조에 저지되지 않고 전체 공간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거친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고벽돌 벽면과 목조 보, 차가운 철제 난간은 강렬한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을 연출하는 요소들이다. 개성이 강한 소재들을 조화롭게 매치하고, 작은 영역 안에서도 서로 상충하지 않도록 위치와 비율을 최적화한 전문가의 스타일링 감각이 돋보인다.
마모된 듯한 느낌의 고벽돌 포인트는 꾸밈 없기 자유로운, 빈티지 스타일을 연출하는 주인공이다. 격자무늬로 전면을 오픈한 대형 창문으로 부드러운 빛이 쏟아져 들어오면, 그 표면이 더욱 고풍스럽고 운치있게 표현되곤 한다.
회의나 미팅이 잦은 오피스에서 넓은 회의 공간은 가장 활용도가 높은 공간이 되곤 한다. 1층에 탁 트인 형태로 배치한 원목테이블과 다양한 형태와 소재의 의자들이 그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정형화되지 않고 편안하게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메인 가구 구성에서부터, 창의적인 발상을 지향하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듬뿍 묻어나온다.
오피스의 외부는 낡고 오래된 것이 풍기는 멋스러움. 그 단순하면서도 감성적인 미학이 잘 담겨져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채 인위적인 꾸밈을 거부한 거친 벽면은 철재 조형물과 더불어 상당히 거칠고 투박한 이미지를 완성한다. 돌출된 조형물의 그림자가 그려내는 움직이는 무늬는 시간에 따라 다른 형태로 외관을 꾸미게 될것이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유니크한 디자인을 찾는다면 이 오피스 디자인에 관심을 가져보길 추천한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서울특별시 양재동이 위치한 대안학교 건물이다. 작업이 들어가기 전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낡은 공간으로, 제로스퀘어 측의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쳐 공고육의 단점과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로 재탄생했다. 입구에서부터 학교라는 틀에 들어맞지 않은 자유로운 스타일과 친근한 표정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마치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는 카페의 입구인양, 발걸음을 유도하는 개방적인 분위기에 주목해 보자.
오랜 기간 방치되었던 4층짜리 건물을 학교라는 교육의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분명 큰 작업이었다. 학생들이 단순히 한 곳에 앉아서 한 곳을 바라보며 학습하는 공간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대화하며 자유롭게 성장하는 공간이어야 했기에 일반 학교보다 더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했다.
카페처럼 시원하게 트여있는 레이아웃과 넓은 동선은 학생들의 편안한 동선와 안정적인 분위기를 확보하고 있다. 많은 펜던트 조명을 설치해 밝고 생동감 있는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따뜻한 색을 담은 벽돌이 벽면을 장식한다. 격식 없이 자유롭게 매치된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모든 학생들이 마음껏 상상하고 마음껏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을 선사하는 마지막 키 포인트다.
격자무늬로 디자인한 전면 유리창 앞에는 학생들이 밖을 바라보며 마음껏 생각을 펼쳐나갈 수 있는 호젓한 공간을 만들었다. 탁 트인 시야와 맑은 햇살을 마주하며 학습할 수 있는 공간, 창의적인 학습 및 사색을 위한 이상적인 공간이 아닐까. 바 테이블과 높은 스툴을 매치한 구성 역시 가볍고 캐주얼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한몫한다. 걸터앉거나 가볍게 뛰어내리거나, 정자세를 요구하지 않는 공간이 아이들의 사고 방식마저 자유롭게 유도할 것이다.
다락방 도서관은 이 학교안에서도 가장 자유롭고 편안한 공간이다. 완벽하게 목재로 마감한 천장과 바닥 및 벽, 그리고 가구의 조합이 마치 숲 안에 들어와 앉은 듯 맑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바닥은 온돌 마루로 시공했다. 아이들이 원하는 책을 꺼내들고 마음대로 앉거나 눕거나, 혼자, 혹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독서 및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책을 즐긴다는 것, 그 본질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세 번째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도자기 공방이다. 도자기 제작과 전시, 판매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스토어형 공방으로, 높은 층고를 활용한 파이프 선반과 노출 시멘트, 철재 가구들의 조합으로 강렬한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을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건촉가는 공사현장에서 주로 쓰이는 강관으로 제작한 선반으로 와일드한 이미지를 극대화했으며 그 사이사이에 나무 판을 대 도자기를 진열하고 건조시키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순순하게 이 공간만을 바라본다면 분명 위압감이 느껴질 것이다. 가공되지 않은 거친 질감과 공사장에서 사용될 법한 소재들의 조합은 인더스트리얼 넘어서 원초적인 산업 현장 그 자체다. 그런 이 공간에 제대로 색과 멋을 불어넣는 것은 다름아닌 도자기들이다. 안쪽으로 물레와 가마가 들어가고 높게 올라가는 파이프 선반에는 아름다운 곡선의 도자기들이 채워졌다. 공사장이라고 해도 될 법한 곳에 도예가의 물건과 예술품이 더해지면서 비로소 공간의 정체성이 완성된 것이다.
네 번째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에 위치한 우아한 고급 단독주택이다. 244.87㎡규모의 넓은 생활 공간에 주변으로 여유로운 정원까지 갖춘 모습은 가히 저택이라 불릴만큼 위풍당당한 모습을 자랑한다. 뚜렷한 인더스트리얼을 담아냈던 앞의 프로젝트와 달리, 고급스러운 클래식 스타일로 어필하는 일곱 명 대가족의 보금자리를 만나보자.
사진은 이 주택의 기본 컨셉을 가장 뚜렷하게 담아낸 거실 겸 응접실의 모습이다. 고급스러운 샹들리에에 전체 윤곽을 그려내는 섬세한 간접 조명은 웜톤의 우드 바닥에 부드러운 명암을 드리우고 있다. 정원을 조망할 수 있도록 낸 파노라마 개구부는 녹색의 정원 풍경을 실내에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정통 클래식 스타일을 한층 편안하고 산뜻하게 전환시키는 통로 역할을 하는 요소다.
곧게 뻗어나가는 대리석 복도가 도도한 표정을 드러낸다. 바닥에 패턴을 넣은 그대로 천장에 조명을 설치함으로써, 마주한 상하 공간이 교차되는 묘한 공간감을 연출한 점이 인상적이다. 바닥에서 적당히 반사되는 빛과 벽면의 볼륨감을 살리는 웨인스코팅 및 조명, 모든 요소가 철저하게 계산된 화려한 장식 포인트들이다.
주방 역시 넓은 공간이 가지는 장점을 그대로 살려냈다. ㄱ자형 조리대에 벽면 전체를 채운 붙박이형 수납장은 대가족의 식사를 책임지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건축가는 벽면과 바닥, 가구까지 화이트 컬러로통일하는 것으로 기품있는 우아한 이미지를 연출하는데 집중했다. 간결한 라인에 미니멀한 조명 구성이 더해질수록, 의도한 컨셉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진중하며 정숙한 무게감이 필요한 곳, 서울 서초동에 자리한 예배 공간이 이 기사에서 마지막으로 살펴 볼 프로젝트다. 공간의 특성을 고려한 건축가는 불필요한 화려함은 배제했지만 빛과 그림자, 그리고 웅장함을 살린 디자인으로 고유의 아름다움을 살려냈다. 마치 빛이 하나로 모여들 듯, 사선으로 이어지는 조명의 배치에 주목해 보자. 빛이 둘러싸고 있는 곳은 자연스럽게 시선이 집중된다.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한꺼번에 집중시키고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이는 섬세한 구성이다.
천장 사이사이에 매입한 조명의 디테일한 모습은 측면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작은 조명이 고르게 퍼져있는 천장이 화려한 이미지를 연출할 법도 하건만, 특정 영역에 집중되지 않고 고르게 퍼져있는 배열로 인해 세련된 포인트 역할을 하는 데 그친다. 위로 집중되지 않는 대중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단상으로 향하게 된다. 전체 공간을 압도하는 단상의 존재감은 이런 세세한 공간 디자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예배를 주도하는 단상은 모든 사람들을 집중시킬 수 있는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이 단상이 특별히 더 높게 치솟아 있는 곳이 아님에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보여지는 것은, 다른 곳보다 더 밝게 연출한 조명과 깊게 들어가는 형태로 부피감을 담아낸 벽면과 천장 디자인 덕분이다. 십자가는 돌출하기 보다는 벽면을 매입하는 디자인을 선택했다. 위압감 없이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자연스럽게 눈과 귀를 몰입시키는 시각적 효과가 축약되어 있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