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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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도는 삶에 대한 예술적 반격
    
이선영(미술평론가)
    
물레나 팽이를 돌리는 듯한 놀이적 요소에 화사한 색감과 경쾌한 율동감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이 실은 우울한 소외감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여러 종류의 종이 띠를 돌돌 말아 이런 저런 높이로 돌출시켜 배열한 뒤 바닥에 놓거나 벽에 거는 권봄이의 입체 작품들은 회의나 강연의 지루함 때문에 참석자가 공책 모퉁이에 하는 낙서처럼 무의미한 행위로부터 왔다. 그것은 의식에 대항(또는 대응)하는 무의식의 대답일 수 있다. 그것은 굉장한 명분과 논리를 갖춘 듯 하지만, 결국은 아전인수적으로 자기 자신만을 지시할 뿐인 공회전하는 담론에 대한 상응물이며, 토론이나 대화를 가장한 독백에 대한 관객의 소심한 반항이다. 지리멸렬해진 청자는 느릿하게 지나가는 권태로운 시간을 자신만의 행위를 통해 가속시키는 것이다. 특히나 예술은 동일자의 독백이 아니라, 타자간의 대화이다.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일방성이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시도하는 대화이며, 강밀한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해야 하는 예술 작품은 이러한 소외의 과정에 대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 귓등으로 흘려보내는 말과 온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대화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것인가. 소외의 과정이 바닥을 칠 무렵, 그로부터 되 튕겨 나오는 어떤 힘이 작동할 수 있는데, 그것이 작업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작업이란 의식에 대한 무의식의 반발력을 다시금 의식화하는 것이다. 권봄이의 작품은 진정한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겉도는 삶에 대한 예술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냅킨, 영수증, 찢어진 노트 등 손에 닿는 주변의 종이 끄나풀들을 돌돌 말면서 시작했던 작업은 마치 불교나 천주교 신도가 묵주를 돌리거나 수피교도들의 회전 춤처럼 잡념을 몰아내는 수행적 행위로 고양된다. 잡음과 잡념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반복적 수행을 통해 비워내는 것이다. 시간 가는지 모르고 하는 작업들은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전시부제이자 작품 제목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순환(circulation)’은 의미와 무의미, 의식과 무의식, 삶과 예술 등등 상호간에 편차가 있을 수 있는 과정에 어떤 흐름을 만들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이때 순환(반복)은 차이로부터 발생, 추동된다. 권봄이의 작품에서는 감기 뿐 아니라, 빼기도 중요한 과정인데, 빼기를 통해 반복은 차이를 만들어 낸다. 내밀한 것을 밖으로 표출하는 빼기는 무한한 사물의 겹에 드라마틱한 리듬을 부여한다. 그것은 내부의 무엇이 밖으로 밀고나온 것이지만, 권봄이의 작품에서 안과 밖의 관계는 하나의 과정에 대한 두 측면이다. 그녀의 작품은 굴곡을 통해 안과 겉이 수시로 서로의 자리를 바꾸기 때문이다.  흐름의 막힘은 모든 차원의 병폐를 만들어내기에, 순환은 치유, 더 나아가 자유를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순환은 형태와 색채, 그리고 행위 자체를 통해 이루어지며, 궁극적으로는 정신적 차원까지 확장된다. 섬유소 덩어리에 인간의 기억을 뒤섞는 권봄이의 작품은 책보다는 스크롤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관객은 책의 단면에 새겨진 그 무한한 겹을 보도록 배치된다. 이때 생명의 나무는 지식의 나무가 되고, 신화의 역사로의 전이가 시작된다. 실낙원의 신화가 말해주듯이 역사의 시대는 비극을 낳았고, 생산과 진보를 통해 비극은 더욱 강화되었지만, 예술은 오래된 종교처럼 다시금 최초의 시작으로 회귀를 통해 치유를 도모한다. 니이체가 영원회귀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끝없이 굴러가는 바퀴의 이미지를 들었다면, 21세기의 젊은 작가는 종이 스크롤을 통해 더욱 자연의 이미지에 근접시킨다. 그러나 양자가 영겁회귀, 즉 ‘이미 무한히 그 자신을 반복하고 유희하고 순환적 운동으로서의 세계’(니이체)라는 점은 마찬가지이다. 권봄이의 작품이 추구하는 순환, 그것에 내재된 영원회귀는 기계적 반복이 아니라, 반복 속에서 차이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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