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는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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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하는 정원 – 전시

내 주변에는 채식하는 지인들이 몇 명 있다. 지인들의 채식유형을 살펴보면 채소만 먹는 완전채식부터 해물이나 유제품을 먹는 부분채식까지 그 유형이 다양하다. 최근에 한국사회에서 채식문화가 점차 확산되는 이유는 윤리적 가치관뿐만 아니라 환경보호나 건강한 삶에 대하여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채식문화에 대해서 한 가지 의문을 품고 있다. 나의 의문은 채식문화가 일반적으로 식물을 윤리적 가치판단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환경과 자연환경의 접점에서 식물은 상대적으로 윤리적 가치판단의 사각지대에 있다. 식상한 이야기지만, 식물은 우리가 공유하는 생태계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도맡고 있다. 그런데도 인간에 의하여 발생하는 식물의 고통은 생태계의 다른 영역에 비해서 표면화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동물권이나 인권 같은 사회적 논의에 비교하면 식물의 존재적 가치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론화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왜 그런 것일까? 만약 식물이 동물처럼 움직일 수 있고 고통 받을 때 울음소리를 낼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예들 들어, 동물해방론자들은 식물이 동물처럼 조직화된 신경체계가 없어서 고통을 느낄 수 없기에 윤리적 가치판단에서 예외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판단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지만, 적어도 동물해방론자들의 주장은 생태계를 인간 중심적인 기준으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종교의 영역이 아닌 이상 포괄적인 사회적 합의를 획득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만지거나 누르면 잎들이 포개지는 미모사나 곤충이 잎을 자극하면 잎을 닫아 사냥하는 파리잡이 풀을 생각해보면, 식물이 동물처럼 조직화 된 신경체계가 없다고 윤리적 가치판단의 대상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동물과 인간에게 고유한 삶의 있듯이 식물에도 고유한 삶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순리에 가깝다.

식물도 생태계 안에서 동물의 일생과 유사하게 생장, 성숙, 개화, 노쇠의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고유한 삶을 전개한다. 식물은 뿌리를 내린 장소에 구속되기 때문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 식물이 동물처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는 사실은 식물이 외부적인 요인으로부터 능동적인 대응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식물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대한 좋은 삶을 펼쳐나가기 위하여 각고의 적응력을 발휘한다. 식물의 적응력은 동일한 종류의 식물이라도 환경에 따라서 생장형태가 달라지게 할 정도로 강력하다. 예를 들어, 식물은 광합성을 위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볕이 잘 드는 방향으로 생장한다. 아스팔트 도로 언저리에 생긴 좁은 틈새를 뚫고 싹을 틔우는 민들레도 식물의 적응력에 대한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식물이 환경에 적응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식물도 엄연히 생태계의 각 영역과 상호작용하는 고유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반적으로 식물을 수단적 잣대로 마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동물해방론자들의 주장처럼 식물을 감각능력이 없는 단순한 존재로 치부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필자도 식물을 수단적 잣대 이상으로 마주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필자는 그동안 김이박 소장의 식물치료 프로젝트 <이사하는 정원> 활동을 지켜보면서 식물의 고유한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김이박 소장은 평소에 지인들의 식물이 병에 걸리면 직접 찾아가서 치료해주곤 했는데, 이러한 활동이 자연스럽게 구체화된 프로젝트가 <이사하는 정원>이다. ‘이사하는 정원’이라는 다소 생소한 프로젝트명은 어떤 맥락에서 작명된 것일까. 필자는 <이사하는 정원>의 ‘이사’가 식물과 김이박 소장의 삶이 동일시되는 과정에서 도출된 단어라고 생각한다. 김이박 소장은 고향을 떠나서 10년 넘게 서울에서 홀로 살아왔다. 김이박 소장이 서울로 이주한 것은 표면적으로 학업과 관련된 문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모든 가치가 집중되고 포화된 서울에서 김이박 소장이 자신의 삶을 뿌리내리고 펼쳐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김이박 소장은 모든 가치가 집중되고 포화된 서울로 이주함으로써 자신의 삶 속에서 싹 틔울 가능성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김이박 소장이 서울로 이주한 것은 물리적 이주가 아니라 정서적 이주에 가깝다. 김이박 소장은 서울에서 십여 년 동안 열 번이 넘는 이사를 했다. 김이박 소장은 자신이 정착한 서울에서 마음 편히 자리를 잡아보기도 전에 떠날 준비를 한 이사 난민이었다. 이처럼 극도로 불안정하고 제한된 거주환경을 오랫동안 경험해온 김이박 소장에게 화분에 심어져 싹을 틔우는 식물의 제한된 생장환경과 인간의 부주의로 발생하는 식물의 고통은 자신이 이사 난민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갖은 고통과 심리적으로 동일시되는 지점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통해 살펴보면 ‘이사’의 의미는 제한되고 불안정한 삶을 의미한다. 또한, 김이박 소장이 병든 식물을 치료할 때 하는 일 대부분이 분갈이라는 점을 통해서도 ‘이사’의 의미를 이와 관련지어 해석해볼 수 있다. 분갈이는 일반적으로 흙이 가진 양분이 고갈된 상태거나 식물의 화분과 흙이 식물 생장용이 아니라 판매용인 경우에 진행한다. 식물의 이사에 해당하는 분갈이는 식물에 매번 위험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분갈이 후에 시들어버리는 식물도 더러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식물의 이사에 해당하는 분갈이를 통해서도 제한되고 불안정한 삶을 읽어낼 수 있다.

김이박 소장이 <이사하는 정원>에서 ‘정원’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정원은 개인과 개인, 공동체와 공동체, 인간환경과 자연환경의 상호관계를 고민하는 장으로서 역할을 한다. 필자는 김이박 소장이 상상하는 정원이 일반적인 정원의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김이박 소장은 <이사하는 정원>을 통해서 의뢰자가 식물을 키우게 된 계기와 식물을 돌보는 과정에 얽힌 사연을 경청한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김이박 소장은 식물이 걸린 병의 원인을 진단하기도 하고, 의뢰자와 함께 앞으로 식물을 잘 키울 방법에 대해 다각적으로 고민하는 상담사 역할을 자임하기도 한다. 식물의 생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식물을 키우는 사람의 생활방식이나 심리적 문제에서 비롯된 경우도 있으므로 의뢰자와의 상담과정은 식물치료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또한, 우리는 식물의 생태적 특징에 대하여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식물을 쉽게 키우거나 빈번하게 죽이고 있다.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과 공부가 필요한 것처럼 식물을 키우는 사람도 식물에 대한 관심과 공부가 필요한 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이박 소장은 “사람이 식물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그 식물에 대해 공부도 하게 되고, 그 관심과 공부가 그 식물을 살려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김이박 소장은 식물뿐만 아니라 식물을 둘러싼 주변 환경을 두루 살핌으로써 식물과 관계를 맺는 각 요소들의 상호관계성에 주목한다. 이 같은 김이박 소장의 상호관계성에 대한 예민함은 정원이 가진 일반적인 개념과도 상당한 부분 일치한다. 그런데 김이박 소장의 정원은 일반적인 정원의 개념과 유사하지만, 물리적인 방식으로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정원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김이박 소장이 치료한 식물은 김이박 소장과 물리적으로 함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이박 소장은 자신과 관계를 맺은 타인과 식물들이 상징적인 영역에서 어우러진 개념적인 정원을 <이사하는 정원>을 통해서 상상하는 것이 아닐까.

정리해보면 김이박 소장의 <이사하는 정원>은 타자(식물+의뢰자)의 제한되고 불안정한 삶을 심리적인 차원에서 공감하고 돌보는 관계의 장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김이박 소장의 <이사하는 정원>을 통해서 식물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고유한 삶을 펼쳐나가는 존재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필자는 그동안 <이사하는 정원>이 이뤄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동물이나 식물 같은 유기체뿐만 아니라 생명이 없는 무기체들에도 고유한 삶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이사하는 정원>은 우리가 익숙하게 지나쳤던 많은 대상과 더욱 가깝게 마주하게 하는 힘이 있다. 나는 SNS에 올라온 동물 관련 게시물을 볼 때마다 종종 놀란다. 왜냐하면, 귀엽고 사랑스러운 동물들의 모습이 SNS에 게시되면 그 게시물에는 여지없이 “나 저거 사줘”라는 댓글이 달리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들이 동물조차도 빈번하게 수단적 잣대로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에서 동물을 대하는 인식도 이러한데 식물에 대한 인식은 동물에 대한 인식보다 더욱 척박할 것이다. 생명을 물건 사듯이 돈으로 손쉽게 살 수 있다는 인식은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문제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함께 공유하는 삶은 시장가치만으로 조직될 수 없다. 삶의 다양한 가치를 시장가치 하나로 재단될 때 삶을 감싸 안은 토양은 메마르고 어떠한 싹도 나지 않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중화하기 위해서는 나와 타자가 더불어 존재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의 재생산이 필요하다. 김이박 소장의 <이사하는 정원>은 거시적인 차원으로 보았을 때 시장가치에 함몰되어 망실된 사회적 가치의 행방을 더듬는 작은 움직임이기도 하다. 비록, 김이박 소장의 <이사하는 정원> 프로젝트는 아주 작은 움직임이지만, 언젠가 이 움직임이 켜켜이 쌓여 상징적인 정원을 구성할 수 있을 때 한국사회에서 망실된 사회적 가치도 이와 더불어 다시 싹을 틔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홍태림 (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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